들어가는 말
바야흐로 인공지능이 대세가 된 시대이다. 이미 우리의 모든 생활이 인공지능에 지배받고 있다거나 기계가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는 특이점에 도달했기 때문보다는 곧 그렇게 되리라는 합의된 인식과 확신이 대세가 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군사나 국방 분야의 상황은 어떠한가? 인공지능서비스의 일상화 추세와 속도에 따를 수는 없지만, 인공지능이 기반이 되는 지능화 무기체계와 몇몇 게임체인저 전력이 중심이 되는 미래전 시나리오가 이미 거론되고 준비되고 있다는 점 역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인공지능의 정의와 핵심 요소
우리나라의 국가인공지능전략에서는 인공지능을 “인간의 지적 능력을 기계로 구현하는 과학기술”로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으나, 전문가마다, 산업분야나 각 나라마다 다양한 정의를 내세우고 있다. 그중에서도 미국의 국방혁신위원회(Defense Innovation Board)를 비롯하여 여러 공인된 해외 국가기관들은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의 특성을 강조하여 “기계학습이 가능한 정보처리 기술”을 인공지능시스템의 핵심적 요소로 꼽고 있기도 하다. 미국 국방부 산하의 DARPA는 기계가 구현하려는 인간의 지적능력을 인지, 학습, 추상화와 추론으로 보고 있는데, 현재 인공지능의 연구 단계는 규칙과 패턴의 이해 수준을 넘어서 맥락적 추론의 이해와 적용(Contextual Adaptation)단계로 나아가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기도 하다.
인공지능시스템이 구현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요소들이 갖추어져야 한다. 우선 ①방대한 데이터셋(Big Data)과 더불어 ②하드웨어 기반의 컴퓨팅 능력, 그리고 ③기계학습이 가능한 SW 알고리즘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물론 이러한 요소들은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클라우드시스템’과 데이터가 고속으로 유통될 수 있는 ‘초연결 통신네트워크’의 조건이 충족될 때 비로소 성숙한 인공지능시스템으로의 기능을 발휘하게 된다.
인공지능시스템은 그 자체로서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독자시스템이라기보다는 정보처리의 대상이 되는 데이터셋의 특성과 내용에 따라 기존의 여러 기술이나 산업 영역과 융합되어 새로운 시스템으로의 혁신적 변화를 일으킨다는 본질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인공지능이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기존의 다양한 분야나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기술서비스나 도구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인공지능은 단순한 독립된 ICT 기술적 차원을 넘어서 어떤 분야와 결합, 융합되느냐에 따라 매우 다양한 발전 경로를 보여주고 있다. 혁신기술로서의 트랙만이 아니라 인문사회와 기존의 산업과 경제 전반에 걸친 인류문명의 패러다임적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을 추동하고 있는 것이다. 여타 과학기술의 영역과 마찬가지로 역시 이 분야의 선도 국가는 미국이다.
미국 국방부의 연구개발 지원과 인공지능 발전 노력
미국 국방부(DoD)의 과학기술정책은 군사 분야에만 한정하여 자원을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기초과학에서 응용과 시스템 레벨에 이르기까지 거의 국가사회 전 분야의 과학기술을 선도하는 목표와 예산체계를 가지고 있다.
미 국방부는 미 연방정부 전체 R&D예산(2020년 기준 1,340억 달러, 한화 약 154조 원)의 절반 가까운 약 600억 달러(한화 약 70조 원)를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그 외에도 군사적 목적이 큰 NASA 등 항공우주 분야와 본토방위(homeland security) 분야를 포함한다면, 미국은 국방영역에 국가연구개발 예산의 거의 60%,∼ 70% 이상을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그간 미국의 압도적인 과학기술 역량은 국방분야에 대한 천문학적이고 광범위한 예산지원과 정책에 힘입은 바 크다. 결국 미국의 세계 패권국의 지위는 이러한 군사과학기술의 바탕에서 보장되어왔고 당분간 그러한 추세는 크게 흔들리지 않을 것 같다.
이미 2차 세계대전을 지나면서 미 국방부의 연구개발 성과가 현대기술문명의 게임체인저 기술로 출현되는 사례를 다수 발견할 수 있다. 명백한 군사적 목적의 연구를 통해 고사양의 목표성능을 겨냥하면서 획기적인(breakthrough) 첨단 군사기술이 개발되고, 이는 다시 상업적인 민수분야로 확산(spin-off)되었던 역사적 사례 또한 자주 인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미 육군의 인트라넷이 인터넷으로, 미 공군의 위치기반기술인 GPS시스템이 범용적 내비게이션으로 발전했다는 사례는 이제는 진부할 정도이다. 아예 미 국방부의 연구개발프로그램들이 관련 과학기술 분야 자체의 발전을 주도하고 견인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인공지능 분야 역시 예외가 아니다.
미국 DARPA가 2003년부터 2억 달러를 투자했던 인지보조학습조직기술(CALO, Cognitive Assistant that Learns and Organizes)이 실리콘밸리의 벤처생태계로 이식되면서 아이폰 탑재의 음성인식비서서비스인 SIRI(Speech Interpretation and Recognition Interface)로 재탄생되었다는 사실은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고 있다.
DARPA는 지속적으로 인공지능 분야의 연구를 선도해왔고, 2018년부터는 차세대 인공지능(AI Next)프로그램을 가동시키면서 현재 20여 개의 핵심적인 인공지능 프로젝트에 2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고 있다.
가령 군사부문 뿐만 아니라 인간과의 접점의 모든 영역에서 인공지능이 설명불가한 블랙박스가 아니라 인간의 개입과 확실성, 그리고 인간을 위협하지 못하도록 하는 통제가능한 기술과 서비스여야 한다는 ‘설명가능한 인공지능(XAI, Explainable AI)’주제의 연구는 이제 전세계 인공지능 연구계의 대세로 자리 잡았다. 또한 인공지능에 인간의 상식(commonsense)을 학습시켜 기계상식(MCS, Machine Common Sense)으로 발전시키고, 더 나아가 종국에는 인간 수준의 인공지능(GAI, General AI)에 다다르게 한다는 야심찬 DARPA의 프로그램 역시 전세계 인공지능 연구의 최전선에서 진행되고 있는 연구 중 하나이다.
미 국방부는 비단 인공지능의 핵심기반기술 개발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연구개발의 성과와 축적된 역량을 바탕으로 군사적 영역과 국방의 전 영역을 인공지능의 활용과 적용의 대상으로 새롭게 탈바꿈시키고 있다.
2014년부터 본격화된 3차 상쇄전략의 주 골자가 기계학습과 무인화 기술이 바탕이 되는 인공지능 기반 자율화 기능을 전 무기체계에 도입하여 전략적 우위를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은 널리 알려진 바이다. 로봇이나 드론 등 자율무인체계뿐 아니라 감시정찰과 전자전이나 사이버, 지휘통제와 타격체계의 거의 모든 전력을 인공지능 기반으로 네트워크화하면서 인간과 기계의 전투력이 결합된 핵심능력을 확보하여 군사역량을 획기적으로 높인다는 전략이다.
이상과 같은 전략목표 아래 미국은 국방 인공지능의 업무 추진체계도 빠르게 갖추어 나가고 있다.
2018년 대통령과 의회에 국가안보를 위한 인공지능 이슈에 대해 조언하는 독립적인 인공지능 국가안보위원회(National Security Commission on AI)가 발족되었고, 펜타곤 내에 국방 인공지능을 총괄하는 조직이 설립되었다.
미 국방부는 장관 아래 6명의 차관과 10여 명의 차관보급 실장들을 두고 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자리가 정보 분야를 총괄하는 CIO(Chief Information Officer)이다. CIO 예하에 인공 지능 분야를 총괄 관리, 감독하는 합동인공지능센터(JAIC; Joint Artificial Intelligence Center)가 문을 열면서 거버넌스 구조가 확립되었다.
JAIC의 최상위 비전은 “인공지능을 통해 국방부를 탈바꿈시킨다(Through AI, transform the DoD)”라는 매우 짧고 강력한 모토이다. 미국은 이제 인공지능을 국방혁신의 강력한 수단으로 채택한 것이다.
한편, 미국뿐 아니라 미국과 패권을 다투는 중국을 위시하여 유럽의 주요 강국들 역시 예외없이 인공지능의 기술개발과 군사적 적용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우리는 왜 국방 분야의 인공지능의 도입을 서둘러야 하는가?
첫째, 미국의 3차 상쇄전략을 통해 살펴보았듯이 이제 미래전 대비 첨단군사력의 핵심은 ICT와 결합된 지능화 기술이기 때문이다. 물론 기존의 군사기술과 전력이 완전히 폐기, 대체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인공지능 기반 기술이 기존 무기체계의 기능에 결합, 융합된 형태로 업그레이드 되는 지능화 추세는 미래 능력으로의 발전에 핵심적 요소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둘째, 전장관리 영역뿐 아니라 엄청난 규모의 인적자원과 물적자원을 관리해야 하는 국방 자원관리 영역에서도 데이터가 기반이 되는 인공지능의 적용과 활용이 국방자원과 예산의 획기적 절감을 지속적으로 가능하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병력의 감축이나 국방행정과 운영 분야에서의 효율적인 예산 집행과 자원의 절감 모두 인공지능의 효과적 적용에 의해 획기적으로 달성될 수 있음이 이미 민수산업 분야에서 자명해지고 있으며, 국방 분야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
셋째, 데이터의 내셔널리즘 경향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공지능은 데이터 기반 기술이다. 데이터 없이는 인공지능시스템이 구동될 수 없다. 하드웨어 무기체계는 국내개발이 용이하지 못할 때 해외에서 도입할 수 있다. 그러나 운용 데이터는 해외구매에 한계가 있다. 이미 무기체계는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에 의해 운용과 성능이 좌우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지능화 무기체계는 우리의 작전훈련 과정과 환경에서 산출된 데이터 기반으로 학습하고 진화하면서 운용을 고도화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 동안 우리는 수도 없이 국방개혁과 혁신을 외쳐왔다. 그러나 그간의 국방개혁과 혁신의 담론이 맹목적이고 공허하게 개혁의 당위성만을 반복해서 강조해온 경향이 있지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첨단기술군 육성, 병력 절감, 군구조개선과 자원의 효율적 관리, 획기적 예산 절감은 개혁의 목적이 아니라 결과여야 한다. 국방개혁과 혁신의 효과는 말로 앞서기보다는 과학기술이 기반이 되는 인공지능을 국방 전 영역의 목적에 맞게 적용하고 활용하고자 하는 현재 노력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성과로서 얻어질 수 있는 결과이다.
우리나라 국방 인공지능 기술개발과 적용은 이제 시작단계이다. 미국과의 격차는 상당하다. 그러나 이제부터라도 국방인공지능 전략과 로드맵을 철저하게 수립하면서 우선적으로 데이터와 클라우드, 네트워크 등 인공지능 기반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관련 제도를 개선하고 거버넌스 구조를 확립하면서 국가적 지원을 확보한다면 분명 국방혁신의 성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발명하는 것이라는 Alan Kay의 명언을 떠올린다. 국방 AI의 미래가 알고 싶은가? 우리가 만드는 국방 AI가 우리의 미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