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기고No.04, 2021/02

4차 산업혁명 시대,
국방기술 혁신 생태계를 확대하라
송윤선 대령/정책학 박사
sys70700@hanmail.net, 육군미래혁신연구센터 (전)비전설계실장

서론

   2016년 3월, 알파고와 이세돌 9단 간에 세기의 바둑대결이 있었다. 단지 1주일간의 이벤트였지만 한국 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며 인공지능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폭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제4차 산업혁명 기술은 한국의 정치, 경제, 산업, 문화 등 모든 분야의 화두가 되고 있고, 세계 각국도 앞으로 인공지능, 로봇 등의 신기술이 국가의 미래를 열어 갈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국방은 신기술 경쟁이 가장 치열한 분야로 우리나라도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국방분야에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접목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국방과학기술 역량은 세계 9위(<그림 1> 참조)로 아직까지 미국, 프랑스, 러시아, 영국 등 선두권 국가 대비 상당한 격차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본 고는 국방과학기술 혁신을 통해 우리나라 국방분야가 적극적으로 제4차 산업혁명을 견인하는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림 1> 세계 주요국의 국방과학기술 순위

세계적으로 제4차 산업혁명은 국방과학기술이 선도하고 있다.

  ABC, ICBM 등으로 불리며 크게 주목받고 있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클라우드, 로봇, 자율주행, IoT 등 제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기술들의 눈부신 발전 뒤에는 미국 국방성이 있다. 미국은 국가 R&D 예산의 절반 내외를 국방 R&D 예산이 차지하며 국방분야가 최첨단 기술개발을 견인하고 있다. 이 중 국방고등연구계획국(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이하 DARPA)은 지난 1958년 설립된 이후 첨단 국방과학기술의 발전을 선도해 왔다. 오늘날 인간에게 새로운 활동공간을 제공한 인터넷 기술이 DARPA를 통해 최초 군사용으로 개발되었으며, GPS, 슈퍼컴퓨터, 패킷 통신기술, 인공지능 등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최근 DARPA는 무인자율주행차량, 자율로봇, 외골격 로봇,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생체합성기술(Synthetic Biology) 등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렇듯 미국이 국방 분야에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하며 첨단과학기술 개발에 몰두하는 것은 그들의 과학기술에 대한 인식과 과거의 경험에 기인하고 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길이 과학기술에 있다고 보고 과학자들로 구성된 대통령 직속의 국가방위연구위원회(National Defense Research Committee, NDRC)를 신설하여 적국을 능가하는 첨단 무기체계 개발에 심혈을 쏟았다. 또한 냉전 시절 미국은 첨단 군사 기술력을 기반으로 하였던 제1차, 제2차 상쇄전략을 통해 절대 우위의 단극체제를 이끌어 올 수 있었다. 현재는 인공지능, 무인 자율, 생체 공학 기술을 고도화하여 ‘효과적이고 경제적이며, 상대방이 감당하기 불가능한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제3차 상쇄전략을 수립하여 추진하고 있다.

구 분 1차 상쇄전략 2차 상쇄전략 3차 상쇄전략
시 기 1950년대 1970년대 2014년 ~
중점투자 전략 핵무기 정밀타격유도무기 무인 자율
작전개념 대량 보복 효율적 전력투사를 통한 공지전 효율적 협력을 통한 통합전
주요 내용 1950년대 구상. 당시 유럽에 대한 구소련의 재래식 공격을 억제하기 위해 전술핵무기의 능력을 발전 1970년대 발전. 구소련이 전략핵 능력을 보유함에 따라 새로운 억제력으로 정밀유도무기를 개발 2030년에 성과 달성 예상. 다양한 미래의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인공지능, 무인자율무기를 개발
<표 1> 미군의 상쇄전략
출처: 류태규, “과학기술기반 안보전략 및 민간협력방안”(2020 안보융합포럼 발표자료, 2020.12.10.)에서 발췌.
우리의 현실은 ?

   미국이 국방분야를 중심으로 신기술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데 반해 우리나라는 민간이 주도적으로 제4차 산업혁명 기술 등 신기술 개발과 응용을 이끌고 있다. 물론 우리도 국방분야에서 신기술을 적용하는 노력을 다각적으로 기울이고 있긴 하다. 예를 들어 헬기와 항공기 조종 훈련에 가상 시뮬레이션을 활용하고 있고 최근에는 군사작전에 드론을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다. 연구개발 분야에서도 미국의 DARPA를 모방하여 미래전장의 개념을 변화시킬 수 있는 새롭고 도전적인 ‘미래도전국방기술개발사업’을 2018년 처음 도입하여 시행해오고 있다.

그러나 국방분야에서 신기술의 개발과 응용은 여전히 초보적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예산, 조직, 제도 등의 인프라도 매우 취약한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미국 등 다른 선진국들과 달리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국방분야보다는 민간에서 훨씬 활발하게 제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개발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활용도 국방보다 민간에서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심지어 민간보다 국방분야에서 더 절실할 것으로 보이는 자율로봇, 군집 드론, BMI, 외골격체계와 같은 기술조차도 민간이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연구 중이며 오히려 국방관계자에게 협업을 제안하고 있다.

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가? 인공지능이나 무인자율 등 첨단기술에 관한 국방관계자들의 관심이나 혁신 의지가 부족한가? 신기술을 개발하거나 활용하는데 필요한 예산이 부족한가? 아니면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국가적 역량이 부족한가? 필자의 시각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신기술에 대한 국방관계자들의 관심은 실로 지대하다. 국방분야에서는 이미 2017년부터 제4차 산업혁명 기술을 국방에 적용하는 군사혁신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오고 있다.

기술혁신을 위한 국방 R&D 예산도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다. 2017년 국방R&D 예산은 2조 7,838억 원(정부R&D 예산의 14.3%), 2020년에는 3조 9,191억 원(정부R&D 예산의 16.2%)에 이르고 있다. 국가적 기술 역량 측면에서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IT 관련 기초 및 응용 기술역량은 세계적 수준이며, 로봇 분야에서도 DRC(DARPA Robots Challenge)와 같은 세계적인 로봇 경진대회에서 우리나라 팀들이 우승하는 등 우리나라의 기술적 잠재력은 매우 뛰어나다.

그런데도 국방분야가 신기술 혁명을 주도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국방 전문가들은 방산 비리와 관련하여 방위사업에 대한 국민적 불신에 따른 위축 및 피로감, 연구 소요기간의 과다로 기술개발의 적시성 상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안전 위주의 기술개발 풍토 등 여러 가지 요인을 거론한다. 필자는 여기에 추가하여 다음과 같이 제도와 관련된 몇 가지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국방기획관리제도(PPBEES)를 근간으로 하는 경직된 국방연구개발 수행절차는 국방기술 혁신의 역동성을 억제한다. 우리의 국방기획관리제도는 1985년 미국의 기획관리체계를 벤치마킹한 제도로, 국방전략과 국방재원을 연계시켜 한정된 재원을 합리적으로 배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로 인해 국방기술 개발과정은 기획-계획-예산편성-집행-평가의 경직된 절차를 따르기 때문에 기술발전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유연하게 반응하며 적기에 소요기술을 확보하는데 불리하게 작용한다. 또한, 대부분의 기술개발이 중장기 기획서인 국방기본정책서(NDP)와 합동군사전략서(JMS), 소요군의 무기체계 소요제기에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에 기술 주도의 혁신이 제한되는 경향이 있다.

둘째, 국방 R&D 예산 대부분은 국방과학연구소(이하 ADD)에 의해 사용된다. 그 동안 ADD는 대부분의 무기체계와 핵심기술을 직접 개발하고 방산업체는 주로 ADD 주관 사업에 시제업체로 참여하여 시제품 제작 및 양산, 시험평가를 지원하는 보조적 역할을 담당하여 왔다. 비록 작년부터 방사청이 국방R&D사업에서 산학연 주관 과제 비중을 높이고자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그 동안 대부분의 기술개발을 ADD에게 독점적으로 부여함으로써 우수한 기술력과 연구자원을 보유한 산학연이 국방기술 개발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제한하였다. 그 결과 ADD 내부의 한정된 인력풀과 연구역량을 초과하는 ‘새롭고 창의적인’ 기술개발을 어렵게 만들고, 이로 인해 국방분야에서 제4차 산업혁명 기술개발과 활용이 활성화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셋째, 누구나 간과하기 쉬운 사안으로서 미래 신기술 소요 결정 과정에서 개발결과물의 최종 사용자이자 수요자인 각 군의 역할이 제한적이다. 물론 미래도전국방기술개발사업은 「핵심기술 연구개발 업무처리지침」 등에 따라 각 군을 포함하여 외부로부터 공모를 받는 절차가 있고, 과제 선정, 평가 과정에서 각 군도 제한적으로 참여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는 각 군 조직의 의견반영이라기보다는 참여자 개인 차원의 성격이 강하며, 의사결정 또한 방위사업청과 ADD의 판단에 대부분 이루어진다. 이러한 구조는 미래 신기술에 대한 소요군의 인식과 관심을 저조하게 만들 수 있으며, 그 결과 국방분야에서 신기술 개발에 대한 근거와 추동력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

국방과학기술의 혁신생태계에 소요군 및 산학연의 참여를 확대하자

앞서 제시한 문제를 해소하고 국방기술 혁신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속 가능하며 제 분야가 융합된 혁신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해관계자 간 상호협력성과 복원력이 우수한 자연의 생태계처럼 지속가능한 국방기술 혁신생태계가 조성되려면 생태계 내에 다수의 행위자들(actors)이 참여하고 이들 간에 상호협력 관계가 조성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방기술 혁신생태계를 유지하여 온 방위사업청, ADD 등 기존 행위자 뿐만 아니라 소요군과 민간 산학연 등도 지속적이고 상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마련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요구된다.

구체적으로 이제부터 소요군이 미래 신기술 연구개발 기능의 일부를 직접 수행한다면 작전운용개념과 기술소요 판단을 동일한 틀 내에 통합하여 사용자에 최적화된 기술을 확보하는데 좀 더 유리할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제도 하에서는 신기술 개발 과제를 소요군이 직접 채택하거나 개발과정에 직접 참여하지 못한다. 즉 소요군이 직접 기술개발사업을 수행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으며, 기술개발 업무는 방위사업청과 ADD, 방산업체 등으로 한정되어 있다.

이와 같은 역할분담은 각 군에 연구개발 기능을 허용하는 미국 국방분야와 대조적이다. 미국 국방성에는 국방 R&D을 담당하는 DARPA가 편성되어 있지만 이와 별도로 각 군에 자체의 연구개발 조직이 편성되어 있으며, 소요군이 필요로 하는 연구개발을 활발하게 수행한다. 미국은 이를 통해 국방부와 각 군이 역할을 분담하여 각 군의 작전 환경과 작전 수행개념에 부합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통합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 있다.

특히 2018년 신설된 미 육군 미래사령부는 빠르게 진행되는 신기술의 발전 속도에 맞춰 육군의 비전을 구현하고자 현대화 전략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사령부 예하에 미래개념연구센터, 전투능력개발사령부, 전투체계부 등이 편성되었으며, 이 조직들은 민간 연구기관과의 긴밀한 협력을 위해 텍사스 오스틴, 피츠버그와 같은 혁신적인 산·학·연 연구기관들이 밀집한 주요 도시에 위치하며 국방 R&D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미래개념연구센터는 미래의 싸우는 개념을 연구하며, 전투능력개발사령부는 미래 전력을 연구 및 개발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를 위해 민간 대학 및 연구소들과 직접 다양한 협력 채널을 구축하여 육군에게 필요한 기술을 확보하고, 전투실험과 실증을 거쳐 특정 무기체계의 시제품을 개발한다.

이와 같은 미국의 시스템은 권한의 위임과 분산을 원칙으로 하는 미국의 거버넌스 철학을 따르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소요군의 작전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구현할 수 있는 무기체계를 직접 개발함으로써 해당 무기체계의 활용성을 높이는 방안이기도 하다. 이것은 무기체계 개발과정에서 실제 사용자인 소요군의 입장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거나 무기체계 개발에 대한 책임감이 떨어질 수 있는 문제들을 완화할 수 있으며, 개념 주도 혁신이냐 기술 주도 혁신이냐의 논란을 해소하고 개념과 기술을 일치시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한, 소요군의 최신 기술에 관한 관심과 지식을 확장해 줌으로써 신기술 개발의 수요가 증대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우리도 현재 국방R&D 기능 중 일부를 각 군에 전환하여 소요군이 직접 기술개발 과제를 채택하거나 연구개발을 주관하여 수행할 수 있도록 재편하는 방안을 본격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만약 여러 가지 제약사항으로 단기적으로 추진하기 곤란하다면 우선 각 군이 무기체계 소요제기 과정에서 소요기획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체적인 기술연구가 가능하도록 제도화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소수기관이 주도하는 폐쇄형의 독점적 연구개발 구조를 민간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개방형의 다원화 구조로 전환하여 민간의 우수하고 풍부한 연구자원과 지식을 활용해야 할 것이다. 특히 국방분야에서 산학연을 통한 신기술을 개발하거나 우수 민간기술의 국방 활용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DARPA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DARPA는 실패 위험성이 높은 10 ~ 20년 뒤의 ‘비현실적인 아이디어’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할 뿐만 아니라 임무달성에 필요하다면 대학에 관련 학과를 신설하거나 연구 참여기관 간 열린 커뮤니티를 만들어 정보를 공유시키고 참여기관 간 경쟁을 유발하는 등 혁신적인 연구생태계까지 조성한다. 그 결과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보유한 신생기업 등 산학연들이 DARPA의 지원을 받기 위해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인프라가 조성되어 있다.

물론 민간 대학, 연구소, 기업 등에 연구 지원비를 투자할 수 있는 막대한 예산과 자율적인 예산사용 권한이 있는 DARPA의 사례를 우리에게 바로 적용하는 것은 다소 맞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기존 ADD 등 위주로 이루어져 온 폐쇄형 생태계를 벗어나 민간 산학연이 지속적으로 제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을 개발하도록 민군 간 공동연구나 우수 신기술의 국방 이전전력화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개방형 국방과학기술 혁신생태계를 조성한다면 미국 DARPA의 효과와 유사하게 산학연의 신기술 연구개발 붐을 확산시킬 수 있을 것이다.

마치며

  일반적으로 여러 계층의 다양한 개체들이 모여 상호작용하면서 생태계가 유지되는 것처럼 제4차 산업혁명 기술의 혁신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의 주체가 특정기관에게 과도하게 집중되는 방식보다는 민·관·군·산·학·연의 다양한 연구기관들이 공동으로 참여하여 상호 밀접한 협력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특히 개발된 기술을 직접 사용하는 소요군에게도 연구개발 기능을 부여함으로써 싸우는 개념과 기술의 일치성을 높여주고 신기술 개발 및 적용에 대한 수요가 활성화되는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민간 산학연이 지속적인 신기술 개발을 유인할 수 있는 개방형 생태계를 마련함으로써 범 국가적으로 신기술 개발 역량이 축적되고 국방과학기술 저변이 확대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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