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과학기술 기반의 기술주도형 전력이 작전을 선도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무기체계를 비롯한 전력체계가 나날이 첨단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대체로 싸우는 방법에 대한 ‘작전’ 개념이 앞서고, 그에 맞추어 필요한 전력체계가 요구되는 방식이었습니다만 이제 급격한 기술발전과 진화가 한층 더 결정적 요소가 되면서, 첨단무기의 출현과 그 성능에 따라 오히려 싸우는 방법이 바뀌어야 하는 시대가 다가왔습니다.
군의 운영개념에 맞춰 기술을 개발하고 무기체계를 획득하는 전통적인 방식의 획득은 급속히 발전하는 과학기술발전 속도를 반영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따라서 군의 소요기획 단계에서부터 첨단 과학기술을 적용한 기술주도형(technology push) 게임체인저(game changer) 전력들을 구축해가는 노력이 절실한 때입니다.
한참 전부터 우리 국방에서는 이같은 추세를 반영하여 의례적이고 수사적인 표현, 가령 ‘첨단기술군’과 같은 용어를 꾸준히 사용해오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 군의 기획관리체계는 기획-계획-예산-집행-평가의 절차에 묶여있어서 초연결, 초지능 사회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융복합적인 사고(기획단계부터 기술, 예산 등을 융합하여 고려)를 반영한 유연한 업무 수행체계로 변화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또한 대체로 상당수 첨단무기뿐 아니라 국내개발 무기체계의 핵심부품과 기술까지도 실질적으로 해외에 의존하여 전력을 구성할 수밖에 없는 우리 국방과학기술과 방산경쟁력의 현실도 한 몫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방위력개선사업 만이 아니라 전력발전 업무 전반의 균형적 발전이 필요합니다. 군대의 유지와 고유임무 수행을 위해 필요한 물품과 장비가 ‘군수품’입니다. 우리 군은 군수품을 크게 ‘무기체계’와 그 외의 ‘전력지원체계’(2012년까지는 비무기체계로 불렸으며, 말그대로 무기체계가 아닌 기타 군수품을 뜻합니다)로 나누고 있습니다.
「방위사업법」에서는 무기체계를 “유도무기ㆍ항공기ㆍ함정 등 전장(戰場)에서 전투력을 발휘하기 위한 무기와 이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장비ㆍ부품ㆍ시설ㆍ소프트웨어 등 제반요소를 통합한 것으로서…”로 정의하고, 전력지원체계는 “무기체계 외의 장비ㆍ부품ㆍ시설ㆍ소프트웨어 그 밖의 물품 등 제반요소”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군수품을 군에 조달하는 획득과 그 운영은 군사력 건설의 핵심이며, 이와 관련된 일을 ‘전력발전업무’라고 합니다. 국방전력발전업무훈령을 따르자면 전력발전업무란 “무기체계와 전력 지원체계(즉 군수품)의 소요기획, 획득, 운영유지, 폐기 등 전 수명주기에 걸친 관리와 그에 대한 정책발전을 포괄하는 개념으로서 전력을 조성하는 업무”입니다. 즉 무기체계를 포함하여 군에 어떤 군수품이 필요할 것인지를 사전 기획(소요기획)하고, 필요한 모든 군수품을 조달・획득하며, 획득 이후 폐기까지 운영하는(군수업무가 되겠지요) 전 과정에 걸친 그야말로 방대한 전력관리업무 전반을 의미합니다.
군수품 중에서도 무기체계만을 군에 조달하는‘무기체계 획득업무’를 일컬어 ‘방위력개선사업(방위사업으로도 불립니다)’이라고 합니다. 「방위사업법」에는 “군사력을 개선하기 위한 무기체계의 구매, 신규개발, 성능개량 등을 포함한 연구개발과 이에 수반되는 시설의 설치 등을 행하는 사업”으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방위력개선사업과 관련된 업무는 「방위사업법」에 근거하여 방위사업청이 전담하고 있고, ‘전력발전업무’는 법령이 아닌 그 하위 법규인 국방부 훈령으로서 「국방전력발전업무훈령」에 의해 규율되면서 대체로 국방부 내 자원관리실이 각 군과 관련 조직을 총괄 관리합니다.
군수품 중에서도 무기체계와 그 획득 과정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집중되는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두 업무 간의 관계로 보면 방위력개선사업은 명백히 전력발전업무의 한 부분으로 포함되는 과정입니다. 그럼에도 전력발전업무의 한 부분인 방위력개선사업을 규율하는 「방위사업법」내에는 ‘전력발전’이라는 용어조차 없고, 오히려 「국방전력발전업무훈령」이 「방위사업법」에 근거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물론 상위 법령에 의해 근거한 업무가 하위의 훈령이나 규정에 규율받는 업무에 비해 반드시 상위의 개념과 우월한 지위를 보장받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국가업무라 할지라도 직접 근거하는 법령이 있어야 조직과 예산, 해당 업무에 대한 법적 지위를 보장받는다는 점에 큰 이견은 없을 것입니다.
거친 표현임을 전제로 하여, 현재의 구조에서는 전력발전업무의 법적 지위가 방위력개선사업의 지위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2000년대 초반, 「방위사업법」 제정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따라 방위력개선사업의 업무영역과 조직이 전체 전력발전체계로부터 독립해 나오면서 법적 근거와 그에 따른 조직을 갖출 수 있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첨단과학기술의 물결이 거센 이 시점에서 보다 미래지향적인 전력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이제는 양자 간의 관계를 다시 돌아보고 광범위한 논의를 거쳐 관련 제도와 업무체계의 재정립과 조정의 가능성이 거론되어야 할 시점입니다. 먼저 전력발전업무도 제도적 근거를 훈령 수준이 아닌 법령 수준으로 격상시키고 법적지위를 공고히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와 검토가 진행되어야 합니다.
국방연구개발과 획득시스템을 획기적으로 바꿔보고자 시도한 지 근 20년 가까이 흘렀습니다. 당시 상황에서는 최선의 개선이었겠으나 그간 시대적 환경과 요구가 바뀌지 않았는지, 현재 그 방식이 계속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점검과 연구가 필요한 때입니다.
전력건설 예산을 비롯한 현행 국방예산 체계에 대해서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상과 같은 전력건설을 둘러싼 법령체계의 현실태는 관련 예산구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상당히 기형적인 국방예산 구조를 온존시키는 일부 원인으로도 작용합니다. ‘방위력개선사업비’, 즉 방위력개선사업 관련 예산은 「방위사업법」에 근거한 예산으로 편성되어 무기체계의 연구개발과 획득에만 쓰이고 있고, 기타 군수품의 개발과 획득은 국방부 소관으로서 병력과 전력 전체 운영유지를 포함한 ‘전력운영비’ 안에서 해결되어야 하며, 양자 간이전용은 법적으로 엄격히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국방과학기술이 기반이 되는 ‘국방연구개발’예산은 방위력개선사업인 무기체계의 획득과정과 개발에만 독점적으로 사용되고 있어서 기타 정보화 사업에도, 전력지원체계사업의 개발이나 기타 운영유지 과정에서도 쓰일 수 없는 예산이라는 사실입니다. 결과적으로 ‘국방과학기술’과‘국방연구개발’은 무기체계 개발에만 독점적으로 사용되는 개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국방과학기술과 국방연구개발은 현 규정상으로 정의된 무기체계를 만들 때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기타 전력지원체계와 정보화사업을 아우르는 모든 군수품 획득에 다 필요하며, 심지어 소요기획이나 운영유지 과정에서도 필요한 개념입니다. 국방과학기술과 국방연구개발의 키워드가 모든 전력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전 단계에 걸쳐 확대 적용되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현재는 무기체계와 전력지원체계를 구분하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이미 위에서 군수품을 무기체계와 전력지원체계로 나누고 방위력개선비와 전력운영비를 단절하여 조직과 인력, 예산체계와 연구개발 및 획득 관련 법규를 달리 적용하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렸습니다.
이처럼 군수품이 무기체계인지 아닌지의 여부에 따라 관련 법적 근거와 그에 따르는 예산구조에까지 순차적으로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만일 군수품을 나누는 분류 기준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얘기는 더 복잡해집니다. 즉 군수품을 무기체계와 전력지원체계로 엄격히 구별할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기술의 융복합과 빅테크 분야의 발전이 군의 전투력 유지를 위해 필요한 ‘군수품’을 무기체계와 전력지원체계, 심지어 정보화체계로 엄격히 구분하는 일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만일 배터리와 각종 센서, 송수신 통신모듈이 내장되어 있으면서도 스텔스 기능과 함께 온갖 보호기능을 갖춘 특수 소재 재킷을 개발해서 우리 병사들에게 입혀야 한다면 이 재킷은 무기체계개발 과정을 거쳐야 할까요, 아니면 피복류가 속한 전력지원체계 개발로 추진해야 할까요? 첨단 함정이 무기체계이지만 엔진 등 상당수 내장 부품과 장비가 무기체계 아닌 전력지원체계로 분류되고 있다면 잘 이해가 가실지 모르겠습니다.
또 있습니다. 통상 방위력개선사업은 대체로 하드웨어 중심의 무기체계 획득과 방산시스템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아직 소프트웨어의 개발과 가치를 인정하는 제도와 예산구조를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합니다. 이 상태에서 상당수의 ‘정보화 사업’은 국방부 내 조직이 담당하면서 방위력개선사업이 아닌 전력지원체계로서 제대로 사업예산을 확보하지 못한 채 전력운영비 안에서 예산을 쪼개 써야 하는 현실입니다.
요즘 인류는 인공지능의 위력을 경험하기 시작하고 있고, 우리 역시 국방인공지능의 출현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미래형 무기체계가 인공지능의 적용과 그 기반으로 그려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잘 알고 계시겠지만 인공지능의 영역에는 전통적인 하드웨어보다는 무형의 데이터와 소프트웨어, 네트워크, 클라우드 기술이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국방인공지능시스템은 하드웨어 무기체계 중심의 방위력개선사업의 틀 안에서 제대로 개발되고 운영될 수 있을까요.
이처럼 구분 자체도 모호해져 가는 군수품이 일단 어떻게 분류되는지에 따라 군에 조달하는 절차와 예산, 조직이 모두 다르다는 점은 위에서 말씀드렸습니다. 무기체계를 군으로 전달하기 까지의 과정만을 담당하는 조직들은 수십 년에 걸쳐 사용되는 물품들의 AS나 업그레이드에 그리 큰 신경을 쓰지 않게 됩니다. 더군다나 자신들의 조직과 무관한 예산으로 운영이 되어야하니 신경을 쓰고 싶어도 쉽지는 않겠지요.
요즘은 몇 년 못쓰는 핸드폰이나 컴퓨터도 시시때때로 프로그램이나 운영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주고, 램이나 저장장치도 자주 바꿔주는 시대입니다. 당연히 한번 군에 도입된 전력이 운영되는 20∼ 30년의 긴 시간 중에 업그레이드와 성능개선이 필요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이처럼 무기체계를 도입하는 방위력개선업무와 유지운영 업무가 서로 다른 조직에 의해서, 서로 다른 예산과 적용법규로 엄격히 갈라져있다는 점을 이제는 심각히 고민해봐야 할 시점입니다.
국방과학기술의 전문성이 전력업무를 비롯한 국방 전 범위로 확대되어야 합니다. 국방과학기술과 연구개발의 개념이 전력발전 업무 전체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말씀은 앞서 드렸습니다. 이는 어떻게 미래전 대응 전력을 건설할 것인지 계획을 세우는 소요기획 단계부터 개발·획득을 비롯한 전력운용의 전 과정에 과학기술 전문성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첨단 과학기술 동향과 이치를 잘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 기술적 전문성이 있어야 적어도 20~30년을 내다보고 어떤 미래전력을 갖추어야 하는지 제대로 계획도 하고 미리 실험도, 연구도 해볼 수 있겠지요. 물론 소요기획과 전투실험, 선행연구 과정이 다 포함됩니다.
그러나 여기에 필수적인 과학기술 전문인력과 조직, 예산이 군과 합참에 그리고 국방부 본부에도 잘 갖추어져 있다고 볼 수 없으며, 그나마 주로 방위력개선사업의 영역과 절차에 상대적으로 집중되어 있는 형편입니다.
예산 측면에서 일례를 들자면 국가재정법 상 연구개발 관련 사업예산은 360목으로 편성되는데, 국방분야에서 360목은 방위사업청 소관예산으로만 편성되며, 국방부와 각 군에서 360목으로 편성된 예산이나 360목의 편성과 집행을 전문으로 하는 인력과 부서는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전력업무의 단절성을 극복하고 연결하는 통합적인 과학기술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현재 군에서 전력을 잘 아는 전문인력들을 체계적이고 자체적으로 양성, 보유하고 있지 못하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 편입니다. 전력에 관여하는 모든 조직에 전문인력이 골고루 퍼져서 서로 유기적으로 업무를 수행해야 할텐데 실상은 꽤 거리가 있습니다.
물론 전담 전문조직이 기능화되어 분화될 수 있지만 이 경우에도 전체를 관통하는 리더십과 관리체계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결국 현재 분절되어 있는 미래 전력을 기획하고 도입하고, 운영하는 전력발전 업무 전체과정을 서로 이어주고 통일성 있게 관리하는 컨트롤타워와 리더십이 절실하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그 임무는 일단 장관님과 장관조직에게 맡겨져 있겠지요.
이상과 같은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그래도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군사력은 크게는 국가의 위상과 경제력 등 총체적인 국력을 뒷배로 해서 갖추어질 수 있습니다. 어려운 시기이지만 K 방역과 바이오, 반도체와 빅테크 분야에 이르기까지 세계 속의 미래과학기술 강소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저력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수준높은 국가적 과학기술 역량과 인재들을 어떻게 국방쪽으로 유인하거나 연계하여 우리나라는 K국방기술과 K방산으로 이끌 수 있을지를 깊이 고민하고 중지를 모아야 하겠습니다.
선진 국방과학기술을 키워드로, 추진의 동력으로 하여, 획득분야를 넘어서서 국방의 전 분야를 개혁하고 혁신하는 키워드로 삼아야 하고, 그 시대적 과업에 제가 몸담고 있는 ‘한국국방기술학회’도 일익을 담당하고자 열심히 여러분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행동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