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3
No.07WEBZINE
지난 1991년, 약 한 달간 벌어진 걸프전에서 연합군이 이라크군을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사막 한가운데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 위치정보시스템(GPS)이라는 비밀 장비가 있었다. 전쟁 기간 7만 명의 사상자를 낸 이라크군에 비해 연합군의 전사자는 300명이 채 안 되는 엄청난 전과를 올린 이유는 당시 최첨단 기술인 GPS를 이용해 사막 깊숙한 곳에서 적의 후방을 공격함으로써, 지형지물 구분이 안 되는 사막 속으로는 절대 진격해오지 못할 것이라는 적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었기 때문이었다.
위성항법시스템(GNSS·Global Navigation Satellite System)은 항법위성의 신호를 수신하는 사용자에게 위치뿐만 아니라 시각정보를 제공해 주는 시스템이다. 미국의 지피에스(GPS), 러시아의 글로나스(GLONASS), 유럽의 갈릴레오(Galileo), 중국의 베이더우(Beidou), 인도의 나빅(NAVIC), 일본의 준텐초(QZSS), 그리고 올해 개발을 시작하는 한국의 케이피에스(KPS·Korea Positioning System)가 있다.
최초의 위성항법시스템인 GPS는 극비리에 군사용으로 개발됐고 토마호크 미사일 등 정밀타격무기에 적용돼 전반적인 무기 성능을 한 등급 업그레이드하는 데 절대적으로 이바지하면서 현재 미국이 슈퍼 파워가 되는데 현격한 공을 세웠다. 또한, 1983년 이후 GPS는 민간에 개방돼 자율주행·드론택시·스마트폰 등과 같이 생활 편의와 재난, 안전, 문화 등 위치정보가 필요한 모든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특이한 사항은, 현재 미국과 세계 패권을 다투고 있는 중국이 35기의 항법위성 체계를 완성하기 위해 2018년 한 해에만 절반에 달하는 17기의 위성을 쏘아 올린 사실이다. 이를 보면 중국이 얼마나 베이더우의 조기 운용에 심혈을 기울였는지 그리고 슈퍼 파워가 되기 위한 핵심요소로 GNSS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 또한, 인도는 파키스탄과의 분쟁 도중 미국이 양측의 충돌을 지연시키기 위해 GPS 사용을 차단했던 사건으로 위성항법시스템 종속에 대한 심각한 문제점을 파악했다. 이는 이후 독자적인 위성항법시스템인 나빅 개발을 시작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종합하면, 미국의 GPS와 러시아의 글로나스와 같이 전 지구에서 활용 가능한 시스템이 이미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진국들이 자국의 위성항법 시스템을 각자 구축하는 것은 위치, 시각이라는 미래 국가 핵심 인프라를 안정적으로 운영해 4차 산업에 대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또한 국방과 국가 안보의 핵심요소를 다른 나라에 의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위성항법시스템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개발을 위한 정책 수립 및 연구개발을 진행해왔다. 2004년 독자 위성항법시스템 개발 중요성에 관한 연구를 시작으로 2014년에는 전 국토에 미터급 정밀위치정보를 제공하는 한국형 SBAS(Satellite-Based Augmentation System)의 개발이 시작됐다. SBAS는 위성항법시스템의 오차 정보를 2기의 정지궤도 위성을 통해 사용자에게 제공하는 대표적인 위성항법 보강시스템이다. 우리나라는 2024년을 목표로 한국형 SBAS인 KASS(Korea Augmentation Satellite System)의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4차 산업혁명과 함께 PNT(Position, Navigation and Timing) 정보가 중추적으로 자리매김함에 따라, 우리 정부는 2021년 한국형 위성항법시스템(KPS·Korea Positioning System)을 구축하기로 했다. KPS는 2035년까지 경사궤도 위성 5기와 정지궤도 위성 3기로 구축될 예정이다.
향후 KPS가 개발되면 정확도가 향상된 위치, 시각정보를 안정적으로 제공하는 국가 PNT(Position, Navigation and Timing)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4차 산업 혁명 경쟁 시대에서 필수 핵심인 PNT 기술을 완성함으로써 이를 기반으로 국민 생활의 질적인 향상과 더불어 관련 산업의 경쟁력이 극대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기존의 통신·기상·관측 목적의 위성뿐만 아니라 8기의 항법위성, 그리고 군 통신위성 및 초소형 군집정찰위성과 함께 바야흐로 실질적인 우주전 강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될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 기술과 함께 연결성과 자동화를 극대화해 사회 전반의 지능화를 실현할 것으로 전망된다. 4차산업 중에는 요즘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자율드론·자율자동차·자율로봇 등이 있다. 이를 위한 핵심 인프라로서는 통신, 시각뿐만 아니라 위치정보 PNT 인프라가 요구되고 그 대표적인 수단인 위성항법시스템은 필수적이다. 일반적으로 자율자동차를 위해서는 20cm의 초정밀 위치정확도가 필요하다.
국방에서도 기동차량·전투기·전투함·미사일방어체계·스마트포탄 등 주요 무기체계에서 미터(m)급의 위성항법시스템이 사용되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는 무인전투기, 무인기동차량, 무인전투함 등 거의 모든 무기체계가 항법, 통신, 인공지능과 결합한 무인화가 진행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미터급보다 한 등급 높은 센티미터(㎝)급 항법 정확도가 요구될 것이다.
그런데 과거 북한의 재밍(전파방해) 공격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약 2만km 고도의 GPS 항법위성에서 방송되는 항법 신호는 재밍에 취약한 단점이 있다. 물론 민간용 수신기와 비교하면 군용 수신기는 재밍에 더 강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방어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하다.
현재의 GNSS와 보강시스템이 제공하는 미터급 위치정확도를 더욱 발전시켜 언제 어디서나 센티미터 위치정확도를 실시간으로 제공하고, 재밍에 더욱 강한 미래 GNSS를 만드는 방안도 미국과 중국에서 제시되고 있다. 수백에서 수만 개의 저궤도 초소형위성을 현재의 중궤도 또는 정지궤도 GNSS와 결합해 운영하는 방안이다. 이 방안이 현실화된다면 적어도 100배 큰 항법 신호를 저궤도 위성에서 방송함으로써 재밍에 매우 강건하고, 4차 산업혁명의 핵심요소인 센티미터급 실시간 위치를 30초 이내에 사용자에게 제공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도심에서 빌딩에 의해 자주 발생하는 위치정확도 저하 문제도 상당 부분 해결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