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크건 작건 간에 집단과 세력 간 물리적 충돌로 점철된 전투와 전쟁의 역사를 살아왔다. 기나긴 전쟁의 역사에서 근대 이전에는 주로 경험에 기반하여 개발된 무기와 전략이 전쟁의 성패를 갈랐으나, 지금 우리는 군사력에서 첨단과학기술의 비중과 중요성이 가장 크고 결정적인 시대를 살고 있다.

  기술발전에 따라 전장개념도 변화하고 있다. 지상·해상·공중의 전통적인 전장 영역을 넘어서서 우주와 사이버가 주요 전장 영역으로 부상하고, 드론, 로봇 등 무인 자율화 기술이나 인공지능(이후 “AI”라 한다)을 비롯한 첨단 정보기술이 적용되면서 무기체계가 지능화되고 융복합되는 추세이다.

  최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 양상을 보면 지해공 전장에서 무기체계의 격돌만으로 진행되는 공식이 무너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참전국들을 넘어서 전세계 인터넷상의 여론전이 승패의 한 요인이 되고 주요 기간망과 사회인프라에 대한 사이버 공격전이 혼란스럽게 뒤섞이면서 더욱 복잡도가 높아진 현대 하이브리드전의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지상의 기간통신망이 파괴된 우크라이나에 일론 머스크의 스타링크사가 우주 공간에서의 위성 인터넷 통신망을 제공함으로써 전세계에 실시간 전장의 모습이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변화된 전장의 모습은 이제 미래전에 대한 예측과 전망이 아니라 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무기체계를 지능화시키는 기술의 발전 양상이 변화하였다. 주로 군사적 필요에 의해 첨단기술이 개발된 후 민수 분야로 이전(SpinOff)되던 과거의 방식이 통용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정반대로 시장 지향의 민수·상용 기술이 군사 분야에 적용되는(Spin-On) 방식으로 군사기술 개발이 이루어지는 경향성을 보이고 있다. 특히 2010년대 들어 4차 산업혁명의 기술 융복합 추세 속에서 상용 분야의 빅데이터, 알고리즘, 그리고 컴퓨팅파워의 발전이 어우러지면서 AI를 비롯한 지능정보화 기술 발전이 가속화되었고, 이러한 혁신기술들이 속속 국방 분야에 적용되어 무기체계와 군사력이 첨단기술에 크게 의존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가시화된 상징적 분기점은 2014년 미국의 ‘3차 상쇄전략’의 공표였다. 요약하자면 군사력의 우위와 전쟁의 승패가 기술적 우위에 의해 갈리기 때문에 과학기술적 우위로써 군사적 우위와 세계 패권국의 지위를 확보해야 한다는 안보전략이다. 민수 분야의 기술혁신이 가속화되는 시대에 중국과 러시아 등 적대국들이 상용 기술을 이용하여 미국의 군사적 우위를 위협할 가능성에 대비하여 이를 상쇄시킬 수 있는 억제 방안으로 제시되었고, 이러한 기술 중심의 군사전략은 현재까지 가장 핵심적인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이 되고 있다.

  더 나아가 미, 중 간의 기술패권 경쟁이 전통적인 군사안보 영역뿐 아니라 산업경제 전반으로 번지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비단 지능정보화 기술뿐 아니라 반도체를 비롯한 부품·소재 분야에 이르기까지 첨단기술이 군사적 영역을 넘어서서 글로벌 공급망 점유와 국가 산업경쟁력을 가늠하는 안보전략기술로 격상되면서 주요국 간의 미래 기술주도권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두 번째는 2021년 통과된 미국 혁신경쟁법(US Innovation & competition Act)과 올해 초 통과된 미국 국가경쟁력법(America COMPETS Act)이다. 혁신경쟁법은 중국의 기술패권을 압도하기 위해 AI, 양자컴퓨팅, 로봇과 반도체 개발 등 핵심기술 분야에 향후 5년 간 2,500억 달러를 지원한다는 내용을, 국가경쟁력법 역시 국가 경제와 안보 강화를 목적으로 중국 견제를 위해 AI와 지능화 분야의 근간이 되는 반도체 산업분야에 520억 달러 이상을 투입한다는 등의 포괄적인 정책지원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앞서 설명했듯이 최근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모두 AI 등 ICT 첨단기술을 적극적으로 국방 분야에 도입, 적용하기 위해 획득 및 국방연구개발정책과 제도 혁신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미국은 벤처와 스타트업을 위시한 민간기업의 창의적 기술능력을 최대한 신속하게 무기체계 개발에 적용하기 위해 혁신플랫폼을 선도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무기체계의 신속 개발을 추진하는 혁신생태계 플랫폼 허브인 디펜스웍스(DefenseWERX) 포탈의 성과가 두드러진다. 이를 기반으로 공군의 AFWERX, 특수전사령부를 위한 SOFWERX, 육군의 ERDCWERX가 연합하여 다양한 첨단 신기술 개발사업들을 공개 챌린지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고 여기에 민·군수의 수많은 벤처와 스타트업들이 활발히 참여 중이다.

  미 공군과 국방부 산하의 DARPA가 공동투자하고 민간법인이 운영하는 아크넷 콘소시움(ARCNet Consortium) 역시 전투원에게 필요한 신속한 기술이전과 개발을 위해 산학연과 정부, 군 간의 협력 컨소시엄 공동연구를 지원하는 포털이다. 미국 소재 벤처를 비롯한 산학연 누구라도 진입장벽 없이 국방 기술개발 분야에 쉽게 참여하고 최단기간 내 계약을 진행할 수 있다.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챌린지 형태의 공개된 개발과 심사과정을 거치는데, 그 과정에서 첨단지능화 기술이 무기체계에 적용되며 민관군 간의 협력 네트워크를 통해 민군기술생태계가 조성되고 활성화되고 있다.

  이처럼 미국 국방 영역의 혁신플랫폼들은 전통적인 거대 방산기업들보다 자율화나 AI 등의 영역에서 IT, 소프트웨어에 강한 민간벤처와 스타트업들 간의 경쟁을 통해 창의력과 혁신동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도전적 프로젝트를 주로 제시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군이 요구하는 기술의 포트폴리오가 근본적으로 변한 것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2019년과 2020년에 진행된 전투기 기동전 AI 알고리즘을 겨루는 해커톤 방식의 알파독파이트(Alpha Dogfight) 챌린지도 아크넷을 통해 진행되었다. 군사 분야에서의 알파독파이트의 충격은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 기사의 대결전이 주었던 충격에 비견된다.

  미 공군의 미래 공중전력 건설 목적의 ACE(Air Combat Evolution)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된 알파독파이트 챌린지는 보잉과 록히드마틴뿐 아니라 Physical AI 등 쟁쟁한 기술기업들이 참여하였다. 그러나 시뮬레이터 기반 가상 공중전으로 F-16 탑건 인간 파일럿과 대항하는 최종 결선에서는 초거대 기업들을 모두 물리치고 AI 벤처 소기업 헤론시스템사의 AI 조종사(AI 딥러닝 분야에서는 에이전트(agent)라는 용어를 쓴다)가 최종 승자가 되었다. 인터넷으로 공개된 결승전에서 인간 조종사는 5:0으로 완패를 당했고, 공식적으로 최초로 AI 조종사에 패한 인간 조종사로 기록되었다. 현재 이 프로젝트는 1:1의 챌린지 단계로부터 1:2, 2:2를 거쳐 다(多) 대 다(多)의 AI 알고리즘으로 단계로 진화, 발전하고 있는데, 2024년 F16 전투기에 탑재되어 인간조종사를 지원할 예정이다. 최종적으로 미 공군은 2040년 무인전투편대의 전면 운영을 목표로 AI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미 공군은 알파독파이트에 이어 작년 9월부터 Golden Horde 프로그램의 공개 챌린지를 진행하고 있다. 이는 알파독파이트의 공중기동전보다 복잡도가 매우 높아져서 가상환경에서 무인기와 미사일 등 다종의 무기체계들이 상호연결되어 교전이 가능한 네트워크 협업 자율형 무기(Networked Collaborative Autonomous weapons)의 AI 기술을 겨루는 공개 챌린지이다. 이 기술은 사전에 철저히 설계된 규칙 기반으로 이루어지기는 하나 교전 간에 인간의 개입 없이 자율무기체계들이 적의 공격을 탐지, 식별, 타격하는 미래전의 게임체인저 기술로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다.

  이처럼 미국은 중국 등 적대국에 대해 압도적 군사력 우위를 점하기 위해 AI를 필두로 첨단지능 정보기술력을 군사 분야에 적극 적용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몇몇 정책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같이 혁신기술을 보유한 우수한 민간 산학연들을 국방연구개발에 적극 참여시키고 있지 못한 편이다. 이러한 가운데 민간 학회 주관이기는 하지만 한국국방기술학회에서 국내 최초로 작년 12월 전차전 대상의 AI 공개 챌린지를 개최, 100일간의 개발 기간을 거쳐 4월 말 본선을 앞두고 있다. 사전에 개발되어 제공된 API(Application Program Interface) 가상환경에서 참가팀들이 학습과정을 통해 가상의 적 전차들을 격파할 수 있는 AI 전차교전모델, 즉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공개 챌린지이다. 첫 대회임에도 불구하고 학생, 군인, 기업팀들을 망라한 총 130여 팀이 신청하여 많은 관심 속에 대회가 진행되고 있다.

  이 챌린지는 AI 기반 무인, 원격 제어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민·군·방산 협업의 장으로서 추후 AI 기술을 군사분야에 적용하기 위한 학술적 연구와 R&D의 선행 연구로서 의의가 있다. 군사 분야에서의 AI 챌린지 형태의 국내 최초의 대회로서 미래의 유무인 전투 수행을 실 구현하고 구체화하기 위한 첫 걸음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같이 이제 무기체계를 개발하고 미래 군사력을 준비하기 위해 비밀리에 폐쇄적으로 운용되는 군사연구소나 방산기업들만의 비공개 개발 방식만을 고집하기 어렵게 되었다. 오히려 신제품과 신기술 출시를 목표로 혁신적인 첨단 ICT 민간벤처나 스타트업들이 공정하고 공개적으로 경쟁하는 협업형 챌린지 방식이 첨단무기체계 개발에 더 효과적인 시대가 되었다. 최고의 미래 안보자산은 창의적이고 혁신적 아이디어와 기술로 무장된 기술인력과 이들이 마음놓고 활동할 수 있는 개방적인 민군혁신생태계이다.